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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폭력이 폭행을 억압할 때
작성자 박종관 등록일 2014-08-12 조회수 674
첨부파일  
[청출어람의 정자에서/(1)]
——————————갑오팔월중순에 들어서며



초가을부터 출발키를 설계하던 여정을 위하여 더위가 한창일 칠월 기간엔 반드시 정리정돈 하겠다던 다짐이, 팔월중순이 되어서도 이행되지 않음이다. 각오와 달리 주변에서의 훼방은 비례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왜? 그리도 방해가 심했을까. 우연이라고만 단정하기엔 너무도 적시적소의 사고들에 휩싸여 소식을 알리지 못한 지가 꽤나 길었다는 느낌에서와 같이—본분에 충실하여 다작(多作)을 집성한 것도 아니면서—그마저 두어 개 앞니가 빠진 마냥이나 엄수치 않은 게시물의 차례처럼, “껑충” 흐트러진 모양새로 안부를 여쭙는 형편이 그 지경이라서 필히 무언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만 곤란스럽게도 꼭이 짚어서 청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람영(藍影)!

昨年 이맘때 당시로부터 한 달 열흘 전 즈음 치러졌던 6•4지방선거 직후, 조촐한 對酌으로 심사를 토로한 것이 그대와의 자리이었던가요, 배꽃이 지며 나뭇잎 사이사이 결실의 모습이 보이던 정자에서?

아시다시피 그 선거 직전부터 이어졌던 숭한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으나 새로 취임하던 시장은 일반적 의식을 추월하여 부부공동 노인복지회관에서 무료배식을 하였다지만, 당일의 나는 양쪽 눈썹부위가 찢기어 절절 피를 흘리는 羞惡이 발생했으며, 곧이어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 직후(월/일)까지 마치 지난 하절기 남쪽을 비켜가던 태풍과 장마의 재해 대신 벌써 네 차례의 수난을 겪어야 하였답니다.

얼마의 초고를 가지고 있는지, 구심은 무엇인지, 알 수 없던 그 향방과 동안의 줄거리를 가슴에 담고서 이쯤 등나무 푸르른 그림자 드리운 정자에 다시 자리를 틀었습니다. 갑오팔월중순 초입——가까이 있을 것도 같은 꿈이건마는 모조리 구만리나 되는 양 선뜻 잡힘이 없는 아득한 신기루와 소형을 기리면서…….

아울러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드는 격정과 고뇌들을 헐거운 음주에 의지하며 비몽사몽, 개중에서도 다급히 처신해야 됐을 최근의 조잡한 사태에 대하여 바삐 작성한 문맥을 다소 보충하여 안부 차 제출해 봅니다. 저와 같이 지저분한 국면에 뒤섞이는 자신을 더 이상 허용해선 안 된다는 한심한 마음과 함께…….

소형! 당시와 지금을 비교할 순 없겠지만, 년/월 현지로 옮겨왔을 때 직무정지 상태로 권한대행이던 행정체제, 다툼이 그치지 않던 지역의 정서, 마치 아귀다툼과 같던 여론의 배경에서 개인사 온라인에 발목이 잡혀있던 그 이면으로 저자거리에서 극심했던 폭력의 상황들이 왜 이 시점 현재의 바탕과 몹시도 흡사하게 클로즈업돼야 할까요, 그 5년 전의 악몽 같던 공해들이…….

그토록 세월은 흘렀건만 저에게 남은 건 오래 전부터 방치된 몇몇 빛바랜 주소(출판사)와 두어 군데 기웃거릴 수 있다는 방편 이외 달리 자신을 위로할 남은 여력이 없답니다. 다만 험난하고 저급한 배경에 싸이면서도 그러한 소재를 수용하며 괴리의 고충을 희석시켜야만 된다는 자업자득, 마치마치 누구의 운명을 놀리는 양 종종 찾아와 가슴을 할퀴는 폭력과 무뢰, 지역의 저급한 특정부위, 그에 대한 원망과 어두운 저항들을 고발하듯 내맡기며 아래와 같이 곁들여 본답니다.



[藍影에게/(2)]


가야할 길은 걸음을 재촉하지만 연속되는 말썽이 자꾸만 옆길로 빠짐을 부추겨서 허비되는 물심양면의 공력과 낭비하는 세월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이쯤 저도 자신의 처지를 살피면서 생의 남은 여력으로 어떤 보람을 찾고자 노력해야 되는지 고심해야 하는 형편이다시피 이명(귀울림)이나 문약한 체질로 인하여 딱히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이기에 휴식 차 다소 거리가 떨어진 간이주점을 주로 출입하며 뇌의 경색을 해소하는 처지인지라 값싼 술을 찾는 운신반경에서 마주해야 하는 상대들의 저에 대한 평판이란 대다수 좋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란 그들과 어울림이 없는 처신이며 시시비비를 가릴 때는 연상연하 고저를 가리지 않고 날선 공방이라서 몹시 부정적 속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저의 삶은 현지인들과 전혀 무관한 마냥 혼자 생활하다시피 이방인과 별다름 아닐 터인데요. 요사이 특정목적을 가진 자들이 저의 뒤를 캔다거나 탐색을 당하고 있다는 불쾌함에 시달리는 심경입니다. 역시나 특정부류들 사이에 허위사실이 유포된다거나 좋지 않은 여론의 형성이 부담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저의 성급한 기질과 예민한 감수성이 문제를 심각하게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삶에 대해 간섭한다거나 그에 소모할 여력과 관심은 일절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인내와 주의를 요하면서 이쪽을 두둔하기보다는 잘못을 충고하는 역할자인 구멍가게 주인의 말마따나, ‘저에게 아무 소리도 없이 말을 하지 않고 살라는 괴변(?)’을 두고 보더라도, 심히 대꾸를 했다가는 곧장 사건으로 이어지는 판국에서처럼, 어쩐지 골탕을 먹이려는 자들이 주변을 감싸고서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린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요는 대다수 저와의 충돌을 하였던 상대들이 ‘형님이니 동생이니 현지 자기네들끼리의 울타리 내’에서 외지인이나 다름이 없으며 유일하게 대항하는 별 볼일 아닌 행색과 형편인 자에게 너그러운 표정과 평가를 할 리가 없다는 편향(텃세)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여기고 있습니다.

위 사건과 관련하여 다음(8월9일)날 파출소에 들렸더니 구면인 경관께서 이쪽 나이를 문의하였습니다. ‘어찌 그리 철이 없소!’ 지탄을 하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짜증도 따랐지만, 선의의 질문이라 여기면서 답변을 하였습니다. 물론 단기간에 연속되는 불미스런 사건들에 대하여 이어지는 부담을 견디며 그냥 간과할 수도 있겠지만, 저런 비참한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동일 유형으로 인한 고충과 수모로 얼굴을 펴고 살 수 있는 내일의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그런 사회적 명분에 일조하고 봉사할 여력은 소소하겠으나 현장조사 차 출동한 경관들과 향후 본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잦은 소란과 신고에서 누적된 고충과 괴로움을 견디며 이처럼 공론화해야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건이 있었던 월/일, 앞서 야기된 사건(****2014-002103)에 대하여 담당조사관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건(2014-002103)과 별 상관이 없는 다른 사유로 동안 입원을 하였기 때문에서 신속히 처리되지 못했습니다만, 가게주인의 권유와 여러 정황으로 가해자와 합의를 하였기에 담당조사관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 사건은 이미 송치된 이후였습니다. 아무튼 합의서 문안처럼 차후로는 같은 일이 번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간략한 절차를 거쳐서 날인을 하였는데요, *월*일 오전의 일이었으며 직접 출석하지 못하는 대신 가해자인 L과 함께 경찰서까지 동행할 것을 주인께 부탁하고 귀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들려 합의사항이 진행된 과정을 확인하는 마당에서 결국 본 사건까지 비화되었다는 그 과정을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거주하는 주공아파트 그곳에서 L을 알게 되었으며 타인들에게 취급되는 그의 처지를 동정하여 수하인 자들이 막말로 하대를 했을 때 “예이, 사람아 그러면 못써” 따위 두둔을 하기도 했으며 실비라지만 사건의 발생장소인 구멍가게에 달린 외상값이라거나 저쪽 간이주점의 대금 지불, 아울러 저러한 상태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사람의 정신이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장화도 사주며 함께 노동이라도 다녀볼까, 한 적이 있었으나, 결국은 거짓말과 헛걸음으로 배신을 하였기에 면박을 주면서 다시는 아는 체 한다거나 인사도 하지 말라며 단절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어 해가 지나는 무심한 세월마냥 한참 이후인 요사이 제가 출입하는 가게에 갑자기 나타나 “형님! 형님!” 하면서 동안 달라진 구색이 보이기에 합석하여 술도 주고받고 하였는데요, 저는 그에게 형님이라는 호칭을 받고 싶은 염사도 없다지만 갑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가—다른 사람에게도 하는 것처럼—형님이라고 부르기에, 그저 그렇게 여기면서 대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이후 갑자기 돌변하여 “자네! 자네!” 내지는 맞대응으로 욕설을 해대기에 다툼이 되었는데요, 마치 사람을 “지붕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버린” 황당함을 겪게 하였으며, 불미스런 그 사건까지 비화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합의까지 이르게 됐잖습니까? 언급타시피 그 진행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오후에 들렸었는데, 제가 그 시간대에 그 가계를 방문한 것은 전무하다시피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당일은 그렇게 되었으며 이래저래 각자가 술을 마시는데 18시 경이 되어서 두 사람이 등장하였습니다. 하여 서로 다른 자리에서 모두 목을 축이고 있을 때, 경찰서를 들리기 전에 면도를 하였는지 경찰서 방문 이후 면도를 하였는지 모르겠으나, 구멍가게 옆집에 사는 젊은 부인이 면도를 해줬다며 L이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성깔이 깐깐한 그 여인의 시아버지와도 원만한 사이입니다만, 그녀는 주변에서——****——취급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살이의 과정에서 그럴 때가 있다는 것에 체험이 있었던 만큼 상대의 내면에 숨겨진 정서를 환기시킨다거나 간간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주의도 당부하기에 제 앞에서는 함부로——****—경우가 없는 마냥 나름의 지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의 부녀자에게 면도를 받았다며 씩씩거리는 언행을 보자 “욱!” 하는 성미가 돋아나 “남의 유부녀에게 면도를 받은 것이 무슨 자랑거리냐”며 툭 내던진 말속에 욕설이 끼었는지 옆에서 술을 마시던 P라는 사람이 왜 욕을 하느냐며 시비를 하였습니다. 아무리 흔한 욕설이라도 선뜻 내뱉은 것이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뉘앙스도 아닌 말투로써 그 사람에게 관여 받을 사안은 아니라며 생각한 것이 언쟁으로 번져 두 사람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L이 P를 자신의 형님이라고 하였는데요, 합의 직후 다시 달라진 태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겠으나, 왜 L의 형님이 되는지 알지 못했던 저를 향해 그 P라는 사람은 “콱!” 때리려는 손짓을 누차 하면서 “너이 금지단어 영세민이지, 이 개금지단어 수급자 탈락시켜 버리겠다!” “이 개금지단어가 주공아파트 슈퍼마켓이라거나 술집에서는 모두 출입을 사절하기 때문에 오갈 데가 없어서 여기까지 온다.” “너이 금지단어 신고대장이라고 소문이 났다.” “두고 보자, 콱 영세민에서 탈락되도록 하겠다.”

어치구니가 없더군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신고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만, 저도 그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심히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거지 인근에서 출입을 사절한다, 오갈 데가 없다는 둥 따위는 심한 모멸과 허위사실이며, 저는 그에게 기초수급자라는 언급을 한 적도 없는데 어디서 무슨 정보를 들었는지 저에 대한 탐색의 기미를 의심치 않을 수 없도록 개인의 인격과 사생활에 대하여 불쾌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허드렛일도 할 수 없는 약체이며 그곳에 소비할 제반의 시절 또한 아니기에 인생의 소중함을 관망하면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기회에 주력해야 한다는 심경으로 자신의 전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듣자하니 P라는 인사가—***—관변단체 분회장이라고 한다는데 지역의 유력인사마냥이나 행세를 하면서 남의 생계를 좌지우지해도 되는 권한과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까. 모멸감에 몹시도 분개하며 사생활에 심각한 간섭을 느끼는 바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행하는 욕설과 손짓을 앉아서 당하다가 주인집 전화로 어쩔 수없이 신고를 하려는데 S라고 하는 사람이 다가와 그의 오른손등으로 저의 오른쪽 목을 두세 차례 툭툭 치면서 “너 죽고 싶냐? 이 금지단어 저 금지단어……” 해대는 수모를 견디며 안방 문턱에 앉았는데 밟을 추세로 두어 차례 발길질을 해대며 발신을 방해하더니 그가 물러서자 뒤따라 P가 다가와 발길질을 하다가 곧이어 전화기회선을 뽑아서 신고하지 못하도록 무도한 행위를 하기에 결국 인근의 Y동사무소까지 가서야 신고를 한 것이 년/월/일 18:40대 시간이었습니다.

바쁜 중—아마도 교대시간—에서도 출동을 고집하는 저의 입장 때문으로 민폐를 끼친 점 죄송하였지만, 침착하고 틀림없으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은 당시의 경관이 현장에 도착하여 조사를 한 것은 무척이나 다행이었으나 그 P라는 분회장은 사법경관들이 현장을 조사하는 방식에 대하여 고성을 지르며 항의, 현장의 상황을 기록하려는 것을 어수선하게 만들었으며, 공무에 하자를 제기하며 한동안 언성을 높였습니다. 저는 그 가게의 인근에서 경관들이 당하는 수모를 한두 차례 본 것이 아닙니다. 저래서야 하는 것입니까?

이는 약자에 대한 무절제의 용력과 사법경관들의 공무가 방해되어 기록할 기회가 훼절됐다고 비판해야 할 것이며, 제가 비록 신고를 하였지만 현재의 절차까지 거치지 않고 싶은 자괴의 심경은 몹시도 형언키 어려운 실정입니다. 하지만 하잘 것 없는 저의 행위가 지역사회의 풍토를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한계를 느끼면서도 조심성이 없이 방치되는 무해한 환경에 대하여 마냥 간과해선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기에 분란을 일으키며 곤욕스런 과정을 감수하는 바입니다. 이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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